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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후기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by yb오늘의기록 2026. 5. 15.

 

종교란 하늘나라에서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엉터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우리가 버리게 될 때, 문제는 더욱 흥미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종교가 우리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발명품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두 가지 필요성 -그러나 세속 사회에서는 어떤 특별한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두 가지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겼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첫째는 몸속에 깊이 뿌리박힌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충동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필요성이다. 둘째는 직업상의 실패, 꼬인 인간관계, 가족의 죽음, 자신의 노화와 사망 등에 대한 우리의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끔찍스러운 고통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다.

하느님은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여러 가지 급박한 이슈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해결책을 촉구하고 요구한다.

13p

 

 

여러 종교에서는 음식을 섭취할 때야말로 도덕 교육을 하기에 매우 적절할 때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마치 무엇인가를 먹게 된다는 크나큰 기대감으로 인해서, 평소에는 저항하게 마련이었던 우리 자신조차도 식탁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과 똑같은 너그러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는 것 같다.

47p

 

 

유대교의 바르 마츠바 의식은 또 하나의 겉으로만 즐거운 의식이니, 사실 이것은 내적 긴장을 누그러트리려는 시도이다.

비록 겉으로는 유대인 소년이 성년이 되는 순간을 축하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는 것 같지만, 이 의식은 사실 소년의 점진적인 성숙을 부모가 이해하고 수긍하게끔 만드는 데에 더 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의 출생과 함께 시작된 양육기가 끝날 때가 되면 부모는, 특히 아버지는 복합적인 아쉬움을 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조만간 자기에게도 쇠락이 찾아오게 되리라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에다가, 새로운 세대에 의해서 추월당하고 밀려나는 사실에 대해서 질투와 분노가 뒤섞인 아쉬움을 토로하게 될 것이다.

의식이 벌어지는 날이 되면, 사람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해서 그 아들의 언변과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한편, 이제는 그 아들을 놓아줄 때가 되었다고 부드럽게 권고하는 것이다.

66p

 

 

 

1445년에 파리 신학 교수회는 프랑스의 주교들에게 바보들의 축제야말로 기독교 달력에서 필수적인 행사라고 설명했다.

"이는 우리의 두 번째 본성이며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을 최소한 한 해에 한 번은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와인 통도 간혹 한 번씩 열어서 공기를 통하게 하지 않으면 터져버리고 만다.

우리 인간은 모두 아무렇게나 모아놓은 통이나 다름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날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에는 하느님을 섬기려는 열성이 더 커져서 돌아오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끌어내야 할 교훈은 이렇다.

만약 우리가 원활하게 기능하는 공동체를 원한다면, 우리의 본성에 관해서 순진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신 우리의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인 감정의 깊이를 완전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우리는 대략 한 해에 한 번쯤은 혼돈을 존중해야 한다.

72p

 

 

십계명은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가하는 공격성을 제어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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