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시선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고 사방에서 자신을 주시한다고 느끼는 것은 편집증의 증상 중 하나다.
이 점에서 편집증은 우울증과 다르다.
편집증은 오늘날의 지배적인 병이 아니다.
이 병은 타자의 부정성과 결부되어 있다.
이에 반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타자를 경험할 수 없는, 시선 없는 공간에 산다.
75p
레비나스에 따르면 한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에 의해 깨어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수수께끼 혹은 비밀로서의 타자에 대한 경험을 잃어버렸다.
타자는 이제 유용성의 목적론에, 경제적 계산과 가치평가의 목적론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
타자는 투명해진다.
타자는 경제적 객체로 강등된다.
이에 반해 수수께끼로서의 타자는 전혀 가치평가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다름을 전제로 한다.
타자의 다름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다름도 사랑의 전제다.
사람의 이원성은 자신에 대한 사랑에 필수적이다.
...
모든 이원성이 사라질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익사한다.
이원성이 모두 사라진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융합되어버릴 것이다.
106p
경청은 누구에게나 그에게 속한 것을 되돌려 준다.
모모는 순수한 경청만으로 싸움도 조정한다.
경청은 화해시키고, 치유하고, 구원한다.
'언젠가는 어린 소년 하나가 모모에게 노래를 하지 않는 카나리아를 데리고 왔다.
모모에게는 훨씬 더 어려운 과제였다.
모모는 일주일 내내 그 새를 경청해야 했다.
그러자 결국 새는 다시 지저귀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소란스런 피로사회는 듣지 못한다.
119p